미국의 바람과 불 (An Escalator in World Order, 2011)
15세 관람가
다큐멘터리 | 한국 | 118분 | 개봉 2012-07-26 |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개봉 2012-08-16
감독 : 김경만
[줄거리]
“미군이 떠나가면 나라가 불행합니다.
미군이 떠나가면 경제가 흔들립니다.
미군이 떠나가면 사회에 혼란이 옵니다.
우리는 우방 미국과 더불어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아멘”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믿음은,
마치 기독교와도 같았다.
[제작노트]
[ Intro ]
제목 <미국의 바람과 불>은
원폭으로 인한 2차대전의 종전 및 해방과 한국전쟁의 융단폭격 같은
군사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이미지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세계 도처에서 반복되는 이미지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폭격 받는 전쟁터였다가
이제 올림픽처럼 전쟁에도 참가하고 무기를 수출하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모습은 꼭 미국을 닮고 싶어하는 듯 하다.
이것은 군사적인 면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측면에서도 중층적으로 비슷하게 반복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이제는 제국주의를 흉내 내려 하고 있다.
그러한 야망을 가진 기업들은 이제 한국에도 적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소망 역시 적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 삶이 텅 비어 가면서도
선진국의 화려하고 번쩍이는 이름이 그것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미국이라는 번쩍이고 날카로운 이름이 한국이라는 초라한 곳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미국으로 인해 분명 한국은 세례를 받은 것처럼 새로 태어났지만
스스로의 모습을 알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 뿐이다.
- <미국의 바람과 불> 김경만 감독 -
[ Focus ]
기록 필름의 재탄생!
이미지와 언어의 충돌이 선사하는 낯선 경험
<미국의 바람과 불>은 한국 초기 기록영화와 대한뉴스, 미군선전영화, 독재정권의 공보처 영상, TV 뉴스릴 등 공식적인 기록 필름들과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재조립하여 전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있는 작품.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서사를 배제한 채, 영상과 언어, 영상과 영상을 ‘충돌’하게끔 구성하여 원래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역전’시킴으로써, 미묘하고도 아이러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떠한 주장 없이 시종일관 장면들을 ‘응시’하게 함으로써 전혀 다른 차원의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 또한 <미국의 바람과 불>이 지닌 독특한 매력일 것. 특정 인물이나 일정한 줄거리, 감독의 의도를 드러내는 나레이션 등으로 구성된 기존 다큐멘터리 화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한 영화임에 분명하지만, 기존의 다큐멘터리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전혀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의미심장한 작품인 것도 분명하다.
'어떤 쇼트도 개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관계가 마치 세계 자체가 그러하듯 중층적이고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는 미로와 같은 것 이길 바란다'는 김경만 감독의 말은 이러한 영화의 전체 흐름을 뒷받침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 복지국가는 우리 정치풍토에 맞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토착화하고 진정한 복지사회를 이룩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 교육혁신과 문화창달로 국민정신을 개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두환의 취임연설과 광주민주학살 장면의 배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비난하는 구국기도회 연설 장면과 ‘지구상의 어느 목표물이나 명중할 수 있게 되었다’며 미국의 무기 개발을 칭송하는 장면을 연결한 쇼트 등에서 그러한 의도가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충돌하는 것들의 연결을 통해, 하나의 쇼트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다층적인 상황들을 유추하게 하는 것. 이러한 시도는 관객들에게 아이러니한 정서를 유발할 뿐 아니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 이면의 세계에 대한 생각까지 이끌어낸다. ‘요약될 수 없는 영화’를 통해 ‘요약될 수 없는 세계’를 사유하는 독특한 영화적 체험이 가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것이 한국이다!
미국 중심 세계 질서에 대한 믿음이 빚어내는 아이러니한 풍경
<미국의 바람과 불>이라는 제목만 놓고 보자면, 반미 (혹은 친미) 다큐나 미국 사회의 연대기를 다룬 역사 다큐 등 미국에 관한 영화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미국의 바람과 불>은 분명히 ‘한국’에 관한 영화다. 미국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 질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맹신을 꼬집고 있는 작품으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미국이 얼마만큼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직시함과 동시에, 그러한 믿음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영화 속에서 끈질기게 비추는 역대 대통령들의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장면과 태극기와 성조기를 동시에 흔들며 그들의 만남을 열광적으로 반기는 국민들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에서 개최된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 공연 장면, 88올림픽 경기장에서 외국인 친구와 함께 ‘웰-컴 투 서울! 씨-유 인 코리아’를 외치는 홍보 영상, 명실상부한 세계적 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영어 공용화를 선포하는 대학 입학식 장면, 영어마을 개관식에서 ‘I Love America’를 노래하는 아이들과 그러한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거쳐, “미군이 떠나가면 나라가 불행합니다.”를 외치는 구국기도회 장면에 이르면, 아이러니함을 넘어, 섬뜩함까지 느끼게 된다.
“(…전략) 광주의 경험과 기억이 미스유니버스 대회와 올림픽으로 인해 있을 자리를 잃고 쇼의 환희와 환상적인 성취감으로 대체되는 것은 참혹한 상황에서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참혹한 마음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자 파괴일 것이다. 그 마음의 파괴 위에서 한국사회는 계속 나아갔던 것이 아닐까. 이러한 방식의 지속은 거의 모든 곳에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을 열거해 말해보자면 한쪽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대표되며 이어지는 독재정권이라 일컬어지는 팔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는 김대중으로 표상되는 민주정권이라 일컬어지는 팔이 있다. 그 양 팔이 모아져서 지배의 울타리가 온전히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김대중은 미국의회의 영어연설에서 시장개방과 규제철폐를 약속하는 것이다. OECD와 G20, 수출대국과 아시아의 경제강국 같은 수식어는 아멘으로 화답할 구원자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을 옥죄는 울타리의 이름일 뿐이다. 그 울타리가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 의해 견고히 지탱되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서글픈 일이다.”
- 감독의 변 중에서
8.15해방에서부터 미군정, 한국전쟁, 베트남전과 경제원조, 박정희 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안들은 물론, 한미 FTA 체결, 한국 사회 도처에 깔려 있는 영어 열풍, G20개최 및 열성 홍보 등 현재까지도 미국에 대한 열렬한 믿음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단편적 비판을 넘어, ‘미국이 우리의 구세주인가?’ ‘그러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라는 보다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미국의 바람과 불>을 통해 한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견고한 ‘울타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진일보!
전통적 다큐멘터리 양식을 독창적 스타일로 뒤엎다
<미국의 바람과 불>은 한국의 정치역사적 조건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뛰어난 탐구다. 영화는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국에 대한 굴종과 경배로 인해 텅 비어버린 한국사회를 탐색한다. 아카이브 푸티지와 선전영화,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를 촬영한 장면들을 교차해가면서, 친미적 수사와 미국의 문화적 경제적 개입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은 한국을 북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지켜준다는 명분 아래 공격적인 미국 기업들에 한국시장을 내주었다. 신 자유주의와 글로벌 비지니스가 만들어낸 결과는 한국 정부가 미국 교외를 본떠 만든 영어마을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놀이공원과 주입식 합숙소의 중간쯤인 이 텅 빈 인공 마을은 미국/국제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단체로 견학 온 아이들이 가짜 출국 심사대에서 미국인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우스꽝스럽고 오싹한 광경이 여기서 벌어진다.
- 제 6회 방콕실험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중
2011년 제 1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첫 상영과 관객상 수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미국의 바람과 불>. 그 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인디포럼, 서울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발, 방콕실험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등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확인했다. 특히, 일반 관객들에게는 다소 난해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실험적 요소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관객상을 수상하였는데, 이는 김경만 감독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이 관객들의 눈길을 잡아 끌 뿐 아니라, 영화적 재미 또한 뛰어나다는 증거로 보인다.
이러한 국내외 영화제에서의 잇달은 상영은 <미국의 바람과 불>이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시도,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공감할만한 영화적 주제, 그것을 풀어가는 독창적이고 도발적인 이야기 구성이 어우러진 수작임을 방증한다. 특히,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에서는 ‘문제적 다큐’, ‘모험적 다큐’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처음 시도되는 스타일이기에,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로 사회적 이슈를 보다 발 빠르게 대중에 전달하는 ‘액티비즘’의 역할을 해 왔던 독립다큐멘터리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영화장르로서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 2010년 최고의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 이후, 못다한 오월의 이야기 <오월愛>, 국내최초 게이 커밍아웃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고 정기영 건축가의 마지막 삶을 담은 <말하는 건축가>, 용산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 등 다큐멘터리 작품의 꾸준한 극장개봉으로 고정 관객층이 형성되어 있는 현재, 전통적 다큐멘터리 양식을 독창적 스타일로 뒤엎은 문제작 <미국의 바람과 불>이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지 기대된다.
[수상정보]
7회 시네바캉스 서울(2012) 초청상영작(김경만)
12회 인디다큐페스티발(2012) 초청국내 신작전(김경만)
37회 서울독립영화제(2011) 수상독립스타상_스탭부문(김경만)
후보장편경쟁(김경만)
16회 인천인권영화제(2011) 초청상영작(김경만)
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1) 후보한국경쟁(김경만)
16회 인디포럼(2011) 초청신작전[장편](김경만)
15회 서울인권영화제(2011) 초청국내작품(김경만)
12회 전주국제영화제(2011) 수상JIFF 관객상(김경만)
후보국제경쟁(김경만)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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